양자장론을 시작하며
양자장론을 시작하며
왜, 양자장론인가?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내 평생 화두다. 모두가 다 좀, 평안하게 잘 살면 안되나?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가?
2014년 삼성전자에서 10년간 일하던 CPU 개발 책임 임원을 퇴임하며 많이 아팠다. 특히 마음이, 많이 아팠다.
분명 세상은 새로운 CPU 구조를 갖는 GPU를 향해 가는데, 삼성은 CPU/GPU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0년 후 삼성이 가야 할 CPU/GPU의 방향을 스티브 잡스로부터 우주에서 CPU 설계를 가장 잘한다는 극찬을 받은 PA Semi 사 대표였던 댄 도버플(Dan Dobberphul), MIT대 학장이며 반도체 회로 설계 분야 세계적 석학인 아난타 찬드라카산(Anantha Chandrakasan) 교수, MIT대 반도체 디바이스 세계적 석학 디미트리 안토니아디스(Dimitri Antoniaids) 교수, DEC 출신 천재급 CPU 아키텍트 리 누엔(Le Nguyen)과 2년여에 걸쳐 차세대 CPU/GPU 개발 전략을 준비했다.
첫째, 기존의 엔비디아 GPU 처럼 프로그램하기가 너무 너무 어려운 구조가 아닌, CPU 처럼 자유 자재로 프로그램이 가능한, 당시 스티브 잡스가 원했던 혁신 GPU - 댄 도버풀이 애플에 영입되며 내게 직접 얘기 해준 - 를 위해, 엔비디아 GPU 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프로세서간 메모리 병목 현상을, 대규모 공간 재구성 메모리(Massively Volumetric Reconfigurable Memory)를 기반으로 하는 CPU형 GPU 선제 개발,
둘째, 삼성은 기존 엔비디아 GPU를 모방해서는 시장 경쟁력이 전혀, 없음으로 기존 GPU 구조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CPU형 GPU 구조로 변환되는 시장 대 변혁기에 선제 대응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고,
셋째, 무엇보다도 정체된 CPU 속도를 2~3GHz대에서 200~300GHz대로 혁신적으로 올리기 위해 기존의 1V 급이 아닌 100mV급 초고속 초저전력 트랜지스터를 2004년에 삼성이 업계 최초로 개발한 MBC FET(Multi Bridge Channel FET) 구조에 집중하여 인텔 FinFET을 완전 압도하는 트랜지스터 기술 선제 개발,
이 세가지 전략으로 당시 애플과 삼성 차세대 스마트 폰을 겨냥한 차세대 CPU/GPU 초격차 우위 전략을 수립하였으나,
2011년 혁신 GPU의 꿈을 가졌던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며 애플 내에서도 혁신 GPU에 대한 비젼이 사라지고,
나는 삼성을 떠나고, 2023년 현재 세상은 엔비디아의 저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하드웨어에 가까운, 프로그램이 엄청 힘들면서도 대안이 없는 엔비디아 GPU 세상이 되고 말았고, 삼성은 뒤늦게 MBC FET에 집중하기 시작해 지금서야 부랴부랴 차별화 전략을 펴기 시작하고 있으니,
[국제]엔비디아, 반도체기업 사상 첫 시총 1조 달러...AI 최대 수혜 | YTN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장 “MBCFET 파운드리 기술로 데이터 기반 사회 열 것” - 조선비즈 (chosun.com)
2010년부터 꾸준히 GPU 선제 개발과 초격차 MBC FET 개발을 주창하던 내 입장에서 내 마음이 얼마나 속이 끓고 답답하고 아팠겠는가,…
세계 최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리어 회사를 떠나야 했던 2014년 1월, 분노로 당겨진 불 화살 하나로 온 통 불바다가 된 내 마음 속 홧불을 끄고자 집사람과 함께 서산 천장암(天藏庵: 하늘이 감추어 둔 암자)을 찾았다.
‘염궁문(念弓門: 마음의 화살을 끝까지 당기는 문, 생각의 끝에 이르는 문)’
현대 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루어 낸 전설적인 선승 경허(鏡虛: 빈 거울) 스님의 힘 찬 글씨를 보면서 마음의 홧불을 좀,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았다.
몇 번 절을 돌아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 나가려는 순간, 2층 건물 앞 어떤 아주머니께서 손을 흔들고 계셨다.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아 가까이 가니 60 전후, 후덕하신 아주머니께서 자기가 부른 게 맞다면서 주지스님이 혹, 손님이 지나가면 꼭! 차 한잔 대접하라고 해서 불렀단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이런 곳에 계시는 분은 어떤 분이실까 궁금하던 차, 잘 되었다 하며 아주머니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따뜻한 방 가운데 차상이 놓여있고 차 한잔을 우려내는 아주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 뵈었는데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진솔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놀랍게도 한 달 전,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셨단다. 앗! 이런!!! 생전 처음 마주치는 상황 속, 젊은 시절 준수한 미모를 가지셨을 후덕한 분이 무슨 사연인가 집 사람과 점점 아주머니 얘기에 빠져들었다.
아들이 있었다. 7살때부터 조현병이었단다. 침대 밑에서, 창문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굿도 하고 무수히 병원도 찾아 다니고 교회 다니며 기도도 하고. 그런데 그해 겨울, 아들을 위해 100일 기도를 들어간지 일주일만에 추운 겨울날 아들이 발가벗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단다. 그 하얀 눈 위에 아들의 그 붉은 피,.. 그러나 그때 정신줄을 놓친 게 아니었다. 부천에서 분식집을 했는데, 남편이 아들 죽은 후 여자를 집에 불러들이는 등 완전히 반쯤 정신이 나갔고, 교회 목사가 자기 위로 한답시고 성폭행을 시도하고, 끝내 교회 장로가 분식집 보증금 2천만을 들고 튀었단다. 그리고 놓친 정신 줄, 간신히 정신병원에서 퇴원했는데 갈 곳이 없던 차에 인연이 되어 천장암 주지 스님과 만나게 되어 절에 밥해주는 공양주로 들어왔단다. 너무 너무 기가 막히고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서, 그 목사와 장로에게 너무 너무 화가 나는 얘기를 들으며, 아주머니께서 해 주신 푸짐한 잔치국수까지 먹고 절을 나오며, 비록 염궁문 글씨는 못 보았지만,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다 보니, 내 자신이 그토록 씩씩거리던 내 마음이, 온통 불 바다였던 것이, 어느새 사그러들어 있었다!!!
내 마음속 홧불은, 불도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이 들었다. 아! 조현병!!! 아직 한번도 조현병 환자를 직접 만나 본적은 없지만, 조현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단한 삶을 이 아주머니를 통해 직접 부딪힌 듯 했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아픈가?
내 평생 화두다. 모두가 다 좀, 평안하게 잘 살면 안되나?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가?
해서 시작한 것이 양자장론 공부다.
왜, 양자장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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